![]() ▲ 서울 성동구 성수동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이윤정 파티셰 |
성수동의 어느 골목. 커다란 창 너머로 분주한 거리가 보이고, 그 안쪽에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작업대와 베이킹 도구, 은은하게 풍기는 달콤한 향기. 이곳은 단순히 디저트를 만드는 공간이라기보다 누군가가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곳에 가까웠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슈잇 베이킹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윤정 파티셰다. 처음부터 베이킹을 직업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경영학과 국문학을 공부했고 광고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바쁜 업무 속에서 퇴근 시간이 밤 12시, 1시를 넘기는 날도 많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집에서 작은 오븐을 꺼내 베이킹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취미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베이킹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어요. 밀가루와 설탕, 버터 같은 재료가 제 손을 거쳐 하나의 결과물이 되는 과정이 좋았죠.”
돌이켜보면 그때의 베이킹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였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답답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녀는 반죽을 만들고 오븐을 켰다. 업무에서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지만, 베이킹에서는 내가 움직인 만큼 눈앞에 결과물이 나타났다.
그 작은 차이가 그녀의 삶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 사진 = 성수동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
“오븐을 켜고 나면, 이상하게 계절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베이킹을 시작한 뒤 그녀가 새롭게 발견한 것은 의외로 ‘계절’이었다. 딸기가 나오는 시기, 무화과가 가장 맛있는 때, 계절마다 달라지는 과일과 재료가 눈에 들어왔다.
늘 다음 일정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직장인에게 지금 이 순간의 계절을 느끼는 일은 낯선 경험이었다.
“예전에는 늘 앞만 보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베이킹을 하면서 ‘지금 이 재료가 가장 맛있을 때가 언제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계절을 기다리는 즐거움도 생겼고요.”
결국 그녀는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파티시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르노뜨르 과정을 수료하고 파리에서 연수를 거친 뒤 국내 베이커리 업계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중 베이킹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누군가가 그것을 이해해 직접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는 일이 생각보다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제가 알고 있는 걸 전달했는데, 그걸 배운 분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래서 매장을 운영하는 것보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게 저에게 더 잘 맞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2019년 초, ‘슈잇’이 시작됐다.
그리고 약 7년 반. 작은 선택에서 출발했던 공간은 이제 취미로 베이킹을 배우려는 사람뿐 아니라 카페와 디저트숍을 운영하는 사람,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 자신만의 메뉴를 만들고 싶은 이들이 찾아오는 베이킹스튜디오로 자리 잡았다.
▲ 사진 = 성수동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만으로 수업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슈잇에서 다루는 메뉴는 쿠키와 쿠키박스, 구움과자, 파운드케이크, 스콘, 버터바, 파이, 크림푸딩, 타르트, 케이크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이곳의 수업을 단순히 ‘레시피를 배우는 클래스’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윤정 파티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수강생이 수업을 마치고 돌아간 뒤 자신의 공간에서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 어느 브랜드의 재료가 적합한지,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완성된 제품은 어떻게 보관하고 포장해야 하는지까지 설명한다. 실제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수강생에게는 메뉴의 경쟁력과 가격, 고객층, 판매 방식까지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다.
![]() ▲ 사진 =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
현재 수강생 가운데 약 70%는 카페나 디저트숍을 운영하는 사업자이고, 나머지는 취미로 베이킹을 배우는 사람들이다.
“어려운 기술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오히려 시간이 지나도 다시 만들고 싶은 메뉴, 실제로 판매할 수 있는 메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말하는 좋은 메뉴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다시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나의 색이 담겨 있는가.’
▲ 사진 =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
“요즘 카페는 맛만으로 설명되지 않아요. 결국 그 사람의 취향이 보여야 하죠.”
카페가 넘쳐나는 시대다. 한 골목 안에서도 여러 개의 카페를 쉽게 만날 수 있고, SNS에는 매일 새로운 디저트와 공간이 등장한다.
이윤정 파티셰가 베이킹 교육에서 ‘브랜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즘은 카페라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취향을 표현하는 곳이잖아요. 맛있는 건 기본이고, 왜 이 메뉴를 만들었는지, 누구에게 판매하고 싶은지, 어떤 분위기로 보여주고 싶은지가 연결돼야 해요.”
그래서 그녀는 수강생들에게 개별 메뉴를 선정하기에 앞서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한다.
먼저 자신의 취향을 알아야 하고, 어떤 사람을 고객으로 만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하며, 어떤 방향의 브랜드를 만들 것인지 정해야 한다. 그다음 로고와 공간, 메뉴와 패키지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걸 따라가기 시작하면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고객을 만나고 싶은지 먼저 정해야 해요.”
그녀에게 베이킹은 기술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 ▲ 사진 =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
“누군가에게 건네는 순간, 디저트는 조금 다른 의미가 되니까요.”
기억에 남는 수강생 이야기를 묻자 뜻밖의 에피소드가 돌아왔다.
한 아이돌 가수가 팬들에게 직접 선물을 만들어주기 위해 슈잇을 찾은 일이었다. 완성된 제품을 주문한 것이 아니라 직접 베이킹을 배우고 만들기 위해 방문했다.
버터를 갈색으로 끓이는 과정부터 반죽, 굽기까지 하나씩 함께했다. 적지 않은 양을 만들어야 했지만 끝까지 직접 참여했다.
그녀가 이 일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유명인이 찾아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분이 직접 만들고 싶어 했다는 게 기억에 남아요. 베이킹이라는 게 결국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내가 만든 걸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게 베이킹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밀가루와 설탕, 초콜릿처럼 평범한 재료가 브라우니와 쿠키가 되고, 그것이 다시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이 되는 과정.
베이킹의 매력은 어쩌면 그 단순한 순환에 있는지도 모른다.
![]() ▲ 사진 =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
“이제는 한국의 디저트를 배우기 위해 해외에서 찾아오는 분들도 있어요.”
최근 슈잇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풍경 중 하나는 해외 수강생의 증가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싱가포르,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한국의 디저트 트렌드를 경험하고 메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 실제로 슈잇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국가별 분포에서도 서울에 이어 방콕과 자카르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디저트가 몇 개월 뒤 해외에서 주목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수강생들은 유명 카페를 찾아다니며 시장을 살펴보고, 베이킹 수업을 들은 뒤 자국으로 돌아가 직접 메뉴를 만들어본다.
“처음에는 해외에서까지 일부러 저희 스튜디오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생기면서 ‘아, 우리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 과정에서 그녀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SNS다.
이제 디저트는 맛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영상 하나가 새로운 메뉴의 존재를 알리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며, 때로는 국경을 넘어 고객을 불러들인다.
![]() ▲ 사진 =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
“유행을 좇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 찾게 되는 것을 만들고 싶어요.”
슈잇은 그동안 빠르게 지나가는 유행의 중심에 서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 만들고 싶은 메뉴를 만드는 데 더 집중해왔다.
앞으로는 그 경험을 조금 더 넓은 형태로 확장할 계획이다.
디저트와 F&B 산업의 역사와 흐름을 다루는 글을 쓰고, 영상 콘텐츠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여기에 지금까지 축적한 베이킹 교육과 매장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브랜딩, F&B 메뉴 개발, 기업 및 브랜드와의 협업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고 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하나의 목표로 단단히 묶어두지는 않았다.
“아직 제 인생의 최종 목표가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방향이 생기면 그쪽으로 가보고, 또 다른 가능성이 보이면 열어두고 싶어요.”
어쩌면 그것 역시 그녀가 베이킹을 통해 배운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정해진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일이다.
![]() ▲ 사진 =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
“카페를 시작한다면,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해요.”
최근 카페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가장 먼저 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현실적이다.
카페를 시작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 직접 현장에서 일해보고, 제품을 많이 만들어보고, 실제 판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경험한 뒤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이 치열해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카페를 시작하는 것과 카페를 운영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예요. 좋아하는 마음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사업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재료 가격과 수급의 변화 역시 현장에서 체감하는 어려움 중 하나다. 최근 특정 디저트가 빠르게 유행하면서 코코아파우더와 피스타치오 등 관련 원재료의 수요가 급증하고, 가격이 단기간에 크게 오르는 현상도 있었다. 여기에 버터를 비롯한 일부 제과 원재료는 수입 의존도가 높아, 시장의 유행과 원재료 가격 및 수급의 변동이 실제 매장 운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기준’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메뉴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유행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자신만의 이유.
![]() ▲ 사진 = 슈잇 베이킹스튜디오 |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안에서 나만의 색이 보여요.”
성수동의 활기찬 거리가 통창 너머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새로운 가게와 새로운 메뉴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동네. 그 한가운데서 슈잇은 오히려 조금 느린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죽을 섞고, 오븐을 기다리고, 계절의 재료를 살피고, 자신만의 맛을 찾는 시간.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한 직장인이 밤늦게 집에서 시작했던 작은 취미는 어느새 누군가에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는 공간이 됐다.
그녀에게 베이킹은 직업이기 전에 삶의 속도를 바꾼 일이었고, 슈잇은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장소가 됐다.
누군가는 취미를 찾기 위해 이곳을 찾고, 누군가는 창업을 준비하며 찾아온다. 또 누군가는 한국의 디저트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먼 나라에서 찾아온다.
그들이 이곳에서 가져가는 것은 단순한 레시피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보다 먼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그 답을 조금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
어쩌면 슈잇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레시피는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더 자세한 슈잇 베이킹스튜디오의 수업과 메뉴, 운영 소식 및 다양한 베이킹 관련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클릭시 이동), 인스타그램(클릭시 이동)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