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의 환호를 받는 어느 유명 여가수가 방송에서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수십 년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무대는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이유는 객석 어딘가에 자신을 훌쩍 뛰어넘는 ‘재능의 소유자’가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관록의 프로마저 떨게 만드는 힘, 그것은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은둔 고수의 존재감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무대 예술가만의 몫이 아니다. 세계적인 액션 스타이자 절권도의 창시자인 이소룡 역시 평생 미지의 상수를 두려워했다. 전광석화 같은 스피드와 파괴력으로 실전에서조차 무적으로 추앙받은 그였지만,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을 고수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이 늘 따라다녔다.
평생 60여 차례의 진검승부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일본의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저서 《오륜서》를 통해 승리의 순간조차 오만을 경계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고수들의 법도(法度)를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정진해야 함을 강조했다.
유홍준 교수는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에서 이를 두고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高手)’라 표현했다. 삶의 길목마다 나보다 뛰어난 고수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이 당연한 진리는 스스로의 오만을 내려놓게 만드는 채찍이 되며, 나를 낮추는 ‘하심(下心)’의 필요를 일깨운다. 원불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처처불상(處處佛像)’을 말한다. 우열이나 고하를 막론하고 만나는 모든 인연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이다. 남을 비교 대상으로 보는 차별심을 넘어, 모두를 고귀한 부처로 섬기는 평등의 시선이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이름 모를 이도, 매일 인사를 나누는 경비원도 저마다의 삶에서 수십 년 내공을 쌓아온 고수이자 부처다.
도처의 고수를 인정하는 겸손과 스스로를 다잡는 정진,
그리고 타인을 부처로 섬기는 하심.
이러한 시선을 품을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깊어지지 않을까.
[김평현]
(사)한국카툰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