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오래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보았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도시 하나가 통째로 대학인 그곳은 책을 읽는 자리가 곧 도서관이었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소가 곧 강의실이었다. 그시절, 그 아름다운 도시가 나를 사로잡은 것은 고성의 풍경도, 이름난 대학의 명성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문화력이 부러웠다.
서른 해가 흐른 지금, 한국 사회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세계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문화시설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음악과 영화는 세계인의 일상이 되었고,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와 반도체는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오랫동안 주변에 머물던 우리가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은, 분명 우리 세대가 이뤄온 성취의 일부다. 나는 그 성취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언제부턴가 우리의 성취 앞에 ‘K’라는 접두사를 붙이기 시작했다. K팝, K푸드, K방역, K방산. 이 한 글자에는 식민과 분단,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마침내 세계의 무대에 올라섰다는 우리의 서사가 압축되어 있다. 나는 ‘K’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그 안에 깃든 안도감까지 함께 읽는다. 우리가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감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남의 기술을 배우던 나라가 이제는 자신의 기술과 상품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속한 존재로 인식해왔다. 근대화란 곧 앞선 세계를 따라잡는 일이었고, 발전이란 선진국과의 간극을 좁혀가는 일이었다. 근대화와 발전은 그 자체로 의심할 수 없는 선(善)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문화 또한 그러한 발전의 문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가 눈부신 성취를 이룬 뒤에도 여전히 우리의 시선이 바깥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세계가 우리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를 확인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세계의 눈에 얼마나 그럴듯하게 비치는지를 확인한다. 열등감은 우월감으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판단의 저울은 여전히 바깥에 놓여 있다.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자조가 “이제 세계가 우리를 인정한다”는 환호로 바뀌었을 뿐이다. 남의 시선에 기대어 자신을 확인하는 습관에서 우리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삶인지, 어떤 가치가 우리의 것인지 스스로 묻고 판단하는 힘은 여전히 빈약하다. 나는 이것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식민주의의 가장 끈질긴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다시 불붙은 퐁피두센터 분관과 라 스칼라 초청 공연을 둘러싼 논쟁에서, 나는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는 지독한 성공주의와 그 이면의 식민주의를 본다. 세계적인 이름을 들여와야 도시의 격이 증명된다고 믿는 마음, 그것은 바깥의 시선으로 우리를 재어온 오래된 습관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니던가. 우리의 성공은 눈부셨지만, 이름과 규모로만 말해지는 우리 문화 속에는 정작 우리가 없다. 우리는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세계의 이름을 빌려야만 우리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 인류에게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의 힘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김구, 『백범일지』, 부록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지금도 가끔 『백범일지』 말미에 실린 김구의 「나의 소원」을 읊조린다. 엄혹한 시대를 꿰뚫어 본 그의 놀라운 통찰에 기대어, 나는 다시 묻는다.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문화의 힘’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을까. 서른 해 전 하이델베르크에서 내가 부러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세계의 부러움을 받기 시작한 우리는 무엇을 부러워하고 있는가.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