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오후 0시 00분쯤 00에서 지은 지 오십 년이 넘은 낡은 상가 건물을 철거하다 상판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이던 인부들을 덮쳐 60대 남성 1명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숨지고 40대 여성 1명은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뉴스를 통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언론 보도의 한 구절이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늘 한편으로는 ‘어찌 이런 일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 그리고 ‘여성’이라는 표현에 유독 눈길이 꽂힌다. 위의 보도에서 쓴 ‘남성’ ‘여성’이라는 말이 과연 올바르게 가져온 단어일까, 하는 의문 부호가 생겨나서이다. 그저 막연하게 대하면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으려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찬찬히 살피면 분명 어폐가 없지 않다. 예의 보도에 쓰인 ‘남성’ ‘여성’의 경우, 이 단어들 대신 ‘남자’ ‘여자’로 바꾸어 사용해야 바람직스럽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전의 힘에 기대기로 한다. 우리말 대사전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려 두고 있다.
“남자: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
“여자: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
“여성: 성의 측면에서 여자를 이르는 말”
“남성: 성의 측면에서 남자를 이르는 말”
이 풀이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라는 단어는 각각의 개체로서의 실재라는 뜻을 지녔고, ‘여성’과 ‘남성’이라는 단어는 그 개체들의 집단적 성정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를테면 ‘내 남자’ ‘내 여자’라는 말은 가능하지만 ‘내 남성’ ‘내 여성’이라는 말은 용인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여성적인 분위기’ ‘남성적인 분위기’라는 표현은 받아들여질 수 있어도 ‘여자적인 분위기’ ‘남자적인 분위기’라는 표현은 인정되지 못한다는 소리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두 경우의 쓰임새가 마땅히 구분되어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결국 모두冒頭에 언급한 보도는 “어제 오후 0시 00분쯤 00에서 지은 지 오십 년이 넘은 낡은 상가 건물을 철거하다 상판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이던 인부들을 덮쳐 60대 남자 1명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숨지고 40대 여자 1명은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라고 고쳐 써야 타당할 것이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남자’ ‘여자’라고 하면 괜히 품격이 떨어지고 ‘남성’ ‘여성’이라고 해야 왠지 품격이 올라간다고 여기는 모양인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남성’ ‘여성’을 써야 할 곳은 물론이거니와, 당연히 ‘남자’ ‘여자’를 써야 할 자리에마저 덮어놓고 ‘남성’ ‘여성’으로 표현해 버린다. 그러면서도 아예 잘못된 용법인 줄조차 모른다.
누군가는 오지랖 넓게 뭐 이런 시답잖아 보이는 것에까지 신경을 쓰고 잘잘못을 따지려 드느냐며 못마땅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적확하고 올바른 언어를 구사하는 일이야말로 같은 사회 공동체에 속한 말무리가 지녀야 할 기본자세 아닐까.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수상
유혜자수필문학상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