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1500곳이 넘는 산부인과 병·의원이 있지만, 실제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분만 의료기관은 260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2025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산부인과 병·의원 총 1571곳 중 분만 진료를 시행한 곳은 16.5%에 그친다. 산부인과 병·의원 10곳 가운데 8곳 이상은 분만실을 운영하지 않는 셈이다.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조산원까지 포함한 전국 분만 의료기관 수는 436곳에 불과하다. 2015년 620곳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184곳, 약 30% 감소했다. 저출생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분만기관 3곳 중 1곳 이상이 문을 닫거나 분만 서비스를 중단한 것이다.
특히 지역 주민의 임신과 출산을 담당하는 병·의원급 산부인과 분만 기능 약화가 두드러진다. 병·의원급 산부인과 중 분만을 시행하는 곳은 2021년 313곳에서 2025년 260곳으로 4년간 53곳 줄었다. 산부인과 병·의원 수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분만실 운영 기관 비율은 19.9%에서 16.5%로 떨어졌다. 이는 의료기관들이 분만 진료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분만실 운영을 포기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산부인과가 운영된다고 해서 분만실까지 보유한 것은 아니다. 상당수 산부인과 병·의원은 여성 질환, 갱년기, 난임, 피임 등 외래진료 위주다. 임신부가 산전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진통이 시작되면 해당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분만실 운영이 어려운 주된 이유는 출생아 수 감소와 높은 고정비용이다. 분만은 출산 시간이 예측 불가능해 24시간 전문 인력과 수술실을 대기시켜야 한다. 응급 제왕절개와 산후 출혈, 태아곤란증 등 위급 상황에 대비해 마취 인력과 신생아 처치 체계도 유지해야 한다. 분만 건수가 줄어 수입은 감소해도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는 쉽게 줄일 수 없는 구조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에서는 연간 분만 건수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서 분만실 유지가 어렵다. 소수 산모를 위해 의료진과 시설을 연중 대기시키는 것이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의료계는 분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와 책임 부담도 분만 포기 요인으로 꼽는다. 산후출혈, 양수색전증, 태반조기박리, 태아곤란증 등 예측 어려운 응급상황 발생 시 의료진은 민·형사 소송과 고액 배상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이 같은 위험 부담으로 젊은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분만 분야를 기피하고, 기존 의료기관도 분만실을 폐쇄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분만 수가 인상만으로는 분만기관 감소를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행 분만 수가는 출산 건수당 보상하는 방식으로, 출산 건수가 적은 의료기관이 24시간 대기 인력과 시설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는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해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거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시설과 장비,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도 분만취약지 지원사업 지역을 추가 공모하며 분만 인프라 확충을 추진한다. 그러나 분만실 감소 문제는 농어촌 취약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도 산부인과 병·의원은 많지만 실제 분만을 시행하는 병·의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서울의 경우 전체 437곳 중 분만 가능한 곳은 41곳에 그친다.
분만 의료기관 감소는 산모가 출산 병원을 선택하기 어려워지는 문제를 넘어서 긴급 상황 시 의료기관까지 이동 시간이 늘어나 산모와 신생아 안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분만실이 없는 지역 임신부는 임신 초기에 멀리 떨어진 의료기관을 찾아야 하며, 정기 산전검사를 위해 장거리 이동이 필수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지면 병원 근처에 머무르거나 계획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 수 있다.
또한 분만기관 감소는 정상 임신부까지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게 한다. 고위험 산모와 미숙아 치료에 집중해야 할 상급 의료기관에 환자가 과도하게 쏠리면서 병상과 의료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최근 출생아 수가 반등하는 점도 분만 인프라 대책의 필요성을 높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출생아 수는 25만4500명으로 전년 대비 1만6100명, 6.8% 증가했다. 출생아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분만기관 감소가 지속된다면 일부 지역 출산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심평원은 임산부와 보호자가 실제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을 쉽게 찾도록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을 통해 관련 정보를 공개했다. 그간 임신부들은 산부인과 명칭만으로 분만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온라인 커뮤니티 조회나 의료기관 문의에 의존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HIRA 건강지도’를 통해 현재 위치 기준 주변 분만 가능 의료기관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의료계는 지역별 최소 분만 건수를 고려한 별도의 운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분만 수가 외에도 전문의와 간호인력의 야간·휴일 당직비, 수술실 및 분만실 유지비 등 필수 고정비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중소병원에 모든 응급 인력을 상시 배치하는 대신 지역 내 산부인과, 거점병원, 응급의료기관을 연계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산부인과, 마취통증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인력을 지역 단위로 공유하고 고위험 산모는 임신 초기에 상급 의료기관과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의료사고 보상 체계 개선도 과제로 꼽힌다. 의료진의 명백한 과실과 불가항력 사고를 구분해 피해 산모와 신생아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고, 의료진이 예측하기 어려운 배상 위험은 국가가 분담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산부인과 수만 놓고 보면 출산 인프라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중요한 것은 24시간 분만과 응급 제왕절개가 가능한 기관이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라며 “분만실은 수익성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필수 의료 시설로, 분만 건수가 적은 지역에서도 인력과 고정비를 지원해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