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주요 시중은행이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를 잇따라 신설하거나 기존 부서명을 변경하는 등 조직 개편에 나섰다. 기업은행은 하반기 조직개편에서 혁신기업 자금 공급과 취약차주 지원 업무를 통합한 ‘생산적포용금융부’를 출범시켰다.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도 생산적·포용금융을 전면에 내세운 전담 조직을 잇달아 만들거나 기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및 상생금융 부서명을 변경했다.
우리은행은 ‘ESG상생금융부’를 ‘ESG포용금융부’로 바꿨고, 국민은행은 ESG상생금융부 일부 업무를 분리해 별도의 포용금융부를 신설했다. 신한은행은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을 함께 담당하는 전담 조직을 마련했고, 하나은행도 상품과 정책금융 부서를 통합해 포용금융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권의 이러한 변화는 현 정부가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에 맞춰 조직을 신속히 조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현 정부는 부동산과 가계대출 중심의 자금 흐름을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으로 돌리고, 저신용자 및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산적금융은 기술혁신 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과 투자를 확대하는 반면, 포용금융은 금융 소외계층의 채무조정과 재기 지원을 강화하는 데 무게를 둔다. 두 정책 모두 금융의 공적 역할 확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실제 업무 대상과 심사 기준, 위험 관리 방식, 성과 평가 기준은 크게 다르다.
은행 내부에서는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 관련 업무를 한 부서에서 담당하는 데 대해 업무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사회공헌, 서민금융 상품 개발, 취약차주 채무조정, 중소·혁신기업 금융 지원 업무가 한 부서에 몰려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포용금융최고책임자(CIFO·Chief Inclusive Finance Officer)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은행들이 이를 앞서 준비하는 모습이다.
CIFO는 금융회사의 포용금융 전략 수립과 사업 추진, 성과 관리 및 내부 통제를 책임지는 임원급 자리다. 금융위원회는 우선 은행권부터 CIFO를 지정하도록 하고, 이후 전 금융권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이 제도는 포용금융을 단순 사회공헌 차원이 아닌 경영 전략과 지배구조에 내재화하려는 취지다.
하지만 현재까지 CIFO 선임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들이 전담 부서부터 신설하는 데 따른 혼란 우려도 존재한다. 포용금융 임원 선임과 관련해 은행 내부에서는 서로 다른 위험을 한 부서에서 관리하고 공급액만 성과 지표로 삼을 경우 업무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존 은행 내 리스크관리책임자(CRO), 소비자보호책임자(CCO), 준법감시인 조직은 각각 위험 관리와 소비자 보호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포용금융 책임자는 상대적으로 신용위험이 높은 차주에 대한 금융 공급 확대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위험 축소를 목표로 하는 CRO와 금융 접근성 확대를 요구하는 포용금융 책임자 간 상충되는 목표가 공존할 수 있다.
또한 포용금융의 정의 자체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점도 과제로 남아 있다.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확대, 정책서민금융 공급, 소상공인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지원 중 어디까지 포함하는지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성과 평가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전담 부서를 신설해도 기존 대출 관행을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관련 업무를 한 조직에 모으면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지는 장점이 있지만,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은 업무 대상과 평가 방식이 달라 각각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금융권은 앞으로 CIFO 도입과 함께 포용금융의 체계적 운영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